데이저스트 레플리카 퍼펙트클론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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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퍼펙트클론 어제의 변주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로 기억한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집에 온 아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다녀왔습니다 _ 라고 큰소리로 말을 한다. 하지만 그 집에는 아무도 없다( :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아이가 집에 왔을 때 부모는 잠시 외출을 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 장면에서 괄약근 꽉 퍼펙트클론 조이고 어금니 꽉 깨물며 북조선 인민공화국 스타일로 박수를 치며 외쳤다. "브라보, 내래 우리 오즈 님 가시는 길에 영광 있으시라요. "서양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장면은 편집 과정에서 삭제해야 될 장면이다. 왜냐하면 아이의 행동( : 다녀왔습니다아 !! )은 의미가 없다. 집에 아이의 인사를 받아줄 사람이 아무도 퍼펙트클론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장면은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동양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有가 아니라 無과 空다. 위에 언급한 장면을 상기해 보자. 부모는 없고( 無 ) 집은 텅 비었기에(空 ) 아이의 인사말은 헛말처럼 보이지만 오즈 야스지로 감독은 아이의 인사말이 쓸데없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퍼펙트클론 않는다. 집에 부모가 있건 없건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인사를 받는 부모가 아니라 인사를 하는 아이의 태도다. 서양에서는 수채화를 그릴 때 흰 종이가 보이지 않도록 물감으로 전체를 색칠한다. 만약에 띄엄띄엄 색칠을 한다면 그것은 그리다 만 그림이 된다. 하지만 동양에서는 동양화를 그릴 때 퍼펙트클론 종이 전체를 물감으로 색칠하지 않는다. 동양화에서 중요한 것은 색칠-하기가 아니라 비워 - 두기(空) 다. 우리는 이것을 여백의 미'라고 하지 않던가. 의 마지막 자막 문구는 "오스 야스지로에게 이 영화를 바칩니다 "였다. 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세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이렇다 퍼펙트클론 할 갈등도 없고 사건도 발생하지 않는다. 히라야마의 일상이 지루하게 반복될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반복이 기계적인 정교함을 갖춘 클론을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어제의 날씨와 오늘의 날씨가 다르고, 어제 만난 사람과 오늘 만난 사람이 다르다. 반복에서 오는 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에 퍼펙트클론 아무 것도 변한 것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늘은 어제의 상주(常住)가 아니라 변주다. 오즈 야스지로가 엄마 없는(無) 텅빈 집(空)에서 인사를 하는 아이의 장면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듯이 이 영화는 상업 영화의 기본 서사라 할 수 있는 갈등과 사건을 비워 둔다(空). 상업 영화에서 즐겨 다루는 갈등과 서사가 퍼펙트클론 벌거벗은 몸뚱이에 덧씌우는 문화적 외피와 같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그 외피를 걷어내고 벌거벗은 몸뚱이의 본질을 드러낸다. 그는 최대한의 행복 대신 최소한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뺄샘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스트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라 했던가. 색을 띤 모든 유형(有形)의 사물은 공(空)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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